그리고 나는 비슷한 환경에서도 절대 이런 선택을 하지 않을 사람들을 알고 있었다.
“어쨌든… 하시는 행동에 비추어볼 때 미지에 대한 공포를 느끼시는 것 같아서요…. 그럼.”
쌍둥이를 보는 호유원의 눈에 기쁨이 나타난다.
알아낸 자의 기쁨.
“여러분의 정체성은, 아직도 인간이네요?”
금제의 조건이 갖추어졌다.
역병이 다가간다.
그 와중에도 노약자를 배려하는 건지 할머니를 안고 있던 ‘직원님’의 모습은 그녀를 더 흐뭇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역시 착한 직원님이야!’
그녀는 선천적으로 타인의 감정에 둔감한 사람이었으며, 그 자기중심적인 면모에서도 옳은 일을 하려 노력한 습관은 그 윤리관과 도덕심의 실행을 다소 극단적으로 만들었다.
지금 이 상황이 도래한 것처럼 말이다.
‘잘됐다.’
[K.LEE: 이제야 안 건 아니지?]
이성해가 물끄러미 스마트폰 화면을 내려다볼때.
[K.LEE: 그리고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요?]
목에 흉터가 있는 남자가 빙긋 웃어 보이며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이성해는 그 웃음은 습관일 뿐이며, 사실 굉장히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라는 신호를 몇 가지 읽어낸다.
‘중요한 일인가 봐.’
“좋은 일, 나쁜 일을 가르는 기준이?”
“당연히 저죠.”
이성해가 빵긋 웃었다.
“근데 저는 착한 사람한테 나쁜 일은 안 해요!”
잠시 흐르는 침묵 후.
“좋아!”
‘이강헌’이 시원하게 대답한다.
“단, 재난관리국에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물론이져!”
“정말로 착한 사람을 돕고 싶다면,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회사에 다니는 것부터 재고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으음.
이성해는 이강헌이 테이블 아래에서 해당 요원의 발을 급하게 밟았다는 것을 알았으나 친절히 외면해 주었다!
자기도 지난번에 비슷한 질문을 했으면서 말이다.
“…아, 그래?”
목소리가 억눌린다.
“근데 그 착한 사람을 애견용 이동장에 구겨 넣어놓는 건 다들 아무렇지 않나 보지?”
“요원님.”
다른 요원이 이강헌을 제지한다.
어쨌든 덕분에 적당한 방법으로 하는 충동적인 침입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내부 협력자가 없다면.
“좀 기다려 보세여.”
그리고 이성해는 그 협력을 아주 잘해줄 자신이 있었다.
최 요원.
청동 요원.
최요원의 손에 든 도깨비 등불에서 어르신의 빛이 어른거리고, 청동 요원의 어깨에는 포승줄이 잘 말려 있다.
출동할 때마다 봤던 모습.
“진정하자.”
출입구의 최 요원이 도깨비등불을 천천히 내려 놓는다.
그리고 양손을 들어 올렸다.
“봐봐. 우리 아무것도 안 할거야. 그럼 괜찮지?”
…….
“고개로만 우리 소통할까? 말하기 힘들면 고개만 움직여도 괜찮아.”
청동 요원의 표정이 변한다.
“그쪽은….”
“이야, 오랜만입니다. 꼰대 양반.”
은하제 대리가 씩 웃었다.
공교롭게도 둘은 이 지산마을에서 안면이 있었는데, 다시 비슷한 장소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포도 요원.”
나는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청동 요원이 자연스럽게 내게 무언가를 던진다.
“두고 가신 지급품입니다. 받아가십시오.”
반사적으로 잡아챈 후에야, 그 정체를 눈치챘다.
……내 요원 재킷이다.
‘…왜.’
“청동아, 혹시 나 난청 생겼나 싶다. 지금 어떤분이 정부 요원 앞에서 시민을 초자연 재난에 가져다 넣겠다고 말하는 걸 들은 것 같은데.”
“청동아.”
“요원님.”
청동 요원이 선임의 말을 막는다.
“규칙은 규칙입니다.”
-언제나 요원의 목숨이 우선입니다.
“여전하네. 크으, 이걸 또 내가 맞히고.”
웃음.
“근데 그런 건 막내가 하는 거 아니다? 짬순이지.”
잠깐만.
최 요원이 이쪽을 보고 씩 웃는다.
결심한 사람의 눈.
“그래도 요원이 돼서 할 수 있는 걸 하나는 시도해 봐야지. …고맙다.”
야!
“저 정도면 꽤 덜 위선적인 요원이네요. 재난관리국답지 않아요. 노루 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꺼져!
“그래서 저도 선별해 보려고요, 노루 님.”
툭.
“더 재난관리국다운 쪽을.”
청동 요원이 호유원의 손에 밀린다.
-숨이 막혀온다. 통증을 참을 수 없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것을 수십 년간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이 들어온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과연 이 생각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예상하는 것 조차 섬뜩하게 만드는 고통, 정신이 흐려지지조차 않는다. 이런 초자연 재난은….
-나는 고통스럽다. 그러니 내가 연기로 일부 변할 수 있다면, 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운 거동이 가능하다면 당장 오방색 신발 끈을 사용해서 이 고통에서 벗어날 것이다.
…!!
-당장. 이 고통을 더는 견딜 수 없다. 신발끈을 묶어서 걷자. 걷는다는 행위만 충족하면 된다! 빨리!
류재관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멍하니 상자를 보고 있다가, 결국 어떻게든 닫힌 상자를 분해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행동할 사람을.
지금까지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침착함을 되찾고, 좀 무모한 행동을 해서라도 이 상황을 헤쳐나가 사람을 구할 방법을 찾으려 들 요원.
“막 손도 떠시구, 너무 힘들어 보이셔서 저도 도우려고 했는데요. 근데 그때 호 이사님이 되게 얄미운 소리를 막 하시더라구여.”
류재관은 달려갔다.
‘안 돼.’
보았기 때문이다.
먼지가 가라앉은 바닥에서 먹물이 올라오며 글자를 그리고 있었다.
글자는 붉고 푸르게 물들며 원형의 문양을 구성한다.
들리기 시작한 꽹과리와 북, 방울 소리.
‘굿판…!’
그리고 이런 식으로 굿판을 벌이는 건 하나뿐이다.
‘제물굿…!’
재난관리국에 전해지는, 강대한 초자연적 귀물을 공양하는 절차였다.
저 백일몽 주식회사의 이사라는 작자를 통째로 공양해서 신적 존재를 불러내, 상자를 부수려는 생각이다…!
분노와 목적의식이 일치한 거다.
‘하지만.’
“요원님!”
그건 최 요원이 쓰면 안 된다!
최 요원은 바닥에 앉아서 눈을 감은 채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기원하는 듯한 입 모양.
축문을 읊고 있는 게 분명했다.
눈이 마주친 최 요원의 동공이 커진다.
놀람.
의심.
환희.
안도.
그리고… 울컥함.
“재….”
“요원님!!”
류재관은 달려가서 멱살을 잡아 올렸다.
“요원님은 제물굿 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않습니까!!”
“…….”
“쓸 이름도 없으면서 그런 짓을 하면….”
“청동아.”
흉터 많은 두 손이 류재관의 어깨를 꽉 잡는다.
“고맙다….”
“…….”
“쓸 이름도 없으면서 그런 짓을 하면….”동시에 울컥했다.
‘자기는…!’
맨날 혼자서 제일 위험한 시도나 하는 작자가!
곁에 있던 최 요원의 눈이 가라앉는다.
버릇 같은 미소도 싹 사라진 이 자가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는 척하며, 쓰러진 ‘김솔음’에게 몸을 숙이고 무언가 듣는 것 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뭐라고? 포도야. 응응,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어쩌죠. 저는 대답해 드릴 의향이 없는데… 계속 궁금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하나는 확실히 알았는데.”
작두가 연기 너머 삿된 것을 가리킨다.
현무 1팀 요원이 선언한다.
“백일몽 주식회사의 호유원 이사는 초자연 재난이다.”
표적 선고를.
“관리국에 복귀하는 대로 보고서 써 올려야지. ‘현무 1팀에서는 종결을 목표로 해당 초자연 재난의 등록을 정식 승인 받으려 한다.’”
최 요원과 호유원의 눈이 마주친다.
차갑게 굳은 얼굴 사이에서 요원의 눈이 타오른다.
“어디, 사람 갈아 넣는 그 미친 사이비 회사가 재난관리국에 찍힌 이사 하나를 계속 구해주려고 할지… 보자고.”
“…아.”
그리고.
“저를 초자연 재난으로 등록해서, 재난관리국에서 직접 관리하시겠다는 거죠? 제가 죽을 때까지? 종결될 때까지?”
검은 연기 너머 삿된 존재.
“정말 너무하시네요.”
그것이 매끄러운 소리를 낸다.
“왜여? 저는 이사님을 공격한 것도 아닌데. 그리고 해석도 이상하구요. 그냥 이사님이 못된 짓하셨다는 말이에여.”
“그리고 저 휴가 중이라 일하는 것도 아니라 괜찮아여!”
“와. 용감하시네요.”
“넵. 좀 그런 편이긴 해요!”
“…….”
“…….”
“그 우물 쓴다고 절대 재난관리국으로 뭐 신원이 인도되고 이런 일 없어. 도깨비 두고 맹세할게.”
아무렇게나 맹세도 할 수 있다.
‘…눈치챘을까?’
가능성은 있었다, 이 망할 후배는 꼭 이런 지점에서만 더럽게 눈치가 좋아서….
정말, 요원이 적성에 맞는 자식이었는데.
‘제발.’
최 요원은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발을 올겼다.
뒤에서 류재관이 자신이 가진 간이 유리 감옥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고맙다, 재관아.’
거짓말에 재능이 없는 자신의 후배가, 방금 막 살아돌아온 녀석이 어떻게든 보조해 주겠다고 재빨리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 사무치게 느껴졌다.
류재관이 잠시 고민했으나, 결국 이를 악물고 우물 속으로 몸을 날렸다. 저 둘만 이동되게 둘 순 없기에.
그리고 따라서 기웃거리던 이성해도.
“오.”
심상치 않은 상황에, 착한 사람들에게‘도움’을 주기 위해 우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오늘은 연차 쓴 날이라 시간도 넉넉했으니 말이다!
변형된 부분은 없는지, 이상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심지어 도깨비 등불까지 들어 올리려 했으나 곧 등불이 손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멈칫한다.
‘우물에 두고 왔지.’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내 오염을 감지하는 행방 막대까지 써가며 내 상태를 어떻게든 알아내려 한다.
나는 약간 초조한 채로 물었다.
“멀쩡한가요?”
“…….”
최 요원이 어깨를 꽉 잡는다.
“멀쩡하다, 포도야….”
나와 최 요원은 당장 몸을 낮추고 사람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나를 보자 자신의 볼을 치려고 해서 황급히 말린 청동 요원, 놀라울 정도로 평온하게 방긋방긋 웃으며 몸을 일으킨 이성해 대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은하제 대리님.
“요원님?”
“오케이.”
한숨을 쉬던 최 요원이 어느새 스크린도어 문을 차분히 개방하려 시도 중이었다.
“요원님?”
“잠깐 살피고 올게.”
“아. 반대편 체크할까여?”
“잠시,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둘 다 제발요!
“그리고 여차하면… 제가 가겠습니다. 제가 그나마 여기에 대해서 잘 알고 있,”
“포도야.”
최 요원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따악.
내 이마에 딱밤을 갈겼다.
“…!”
으아악!
“포도는 내가 무슨 자살희망자로 보이는 걸까요? 당연히 조심히 확인만 하고 돌아올 생각이었지.”
최 요원은 웃는 얼굴임에도 상당히 빡쳐 보였다….
“솔직히 저와 청동 요원님 보다는 요원님이 더 돌발행동을….”
“어허.”
헙.
나는 재빨리 최 요원의 딱밤을 피하며 뒤로 물러났다.
청동 요원에게 공감의 눈빛을 보냈으나, 도리어 정말 할 말이 많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다들 멋지게 자기 장비를 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노루 님은 아이템 있으세여?”
“…….”
아뇨.
저는 거지입니다….
게다가 ‘X’ 표기가 그려져 있던 그립톡의 가운데는, 황금빛이 아니라 붉은색으로 마감되어 있었다….
“안내게시판 같은 것부터 살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영역이 있는 초자연 재난은 규칙성 있는 괴담일 확률이 높으니까요.”
“좋아. 그럼 선발대 지원하실분? …아니, 다들 진짜 적극적이십니다. 다 스카웃감이야, 진짜.”
방어용 장비 다 갖춘 고인물들끼리 움직이니 이런 일이 생긴다.
나는 안개 속을 엿보려던 최 요원에게서 약간 낭패한 기색이 스치는 것을 보았다.
“잘 안 되네. 호부가 아예 효력이 없어. 근데… 하나는 확실하다.”
“아니면 ‘숲이 근처’라는 게 이 역의 정체성에 영향을 준 거지. 원래 어둠이라는 건 사람의 인지에 영향을 받잖냐.”
“아이고, 포도가 많이 무섭겠는데?”
하지만 은하제 대리님이 코웃음을 쳤다.
“공무원 양반, 노루가 무슨 이런 걸 무서워하겠습니까. 이 녀석, 사람 갈아버리는 토크쇼도 들어갔던 녀석인데. 안 그러냐?”
“…….”
하.
나는 대리님에게 가까스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물론입니다. …재난관리국에 잠입하면서 만든 인물 설정입니다.”
“짜식, 일 잘하는 건 여전하구만.”
“감사합니다.”
나는 최 요원을 보았다.
상대가 빙긋 웃는다.
“오~ 그러니까 포도가 사실은 겁이 없는 냉철한 인격의 소유자시다?”
“…….”
아니, 그 정도까지 말씀드리지는 않았는데…!
“혹시 공무원 나으리들은 뭐 방법 없습니까? 보니까 느낌 싸한 게 귀신이나 원혼 같은, 정통 괴담류의 불길한 장소, 뭐 그런 쪽 같은데.”
“오, 잘 맞히셨네. 저 안개 낀 숲에서 전체적으로 삿된… 그러니까 사악한 느낌을 받긴 했는데. 보통 사기라고 부릅니다. 그걸.”
최 요원이 턱을 매만진다.
“근데 이게 숲 자체에서 기인한 건지, 아니면 사람이 너무 많이 죽어서 생긴 건지 모르겠다 말이야.”
“담배 있습니까?”
“아이고, 최근에 끊어가지고. 근데 있어도 안 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말이죠. 지금 상황이.”
두 흡연자를 묵묵히 보던 청동 요원이 선언했다.
“차라리 식사를 하시는 편이 낫겠습니다.”
워낙 비상식량이 필요할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 직군이다 보니, 일행은 대부분 약간의 보존식품을 가지고 있었다.
“오, 뻥튀기.”
“냄새 안 나면서 보관하기 편해서 말이죠. 하하하! 청동이는 안 좋아하지만.”
고개를 돌리자, 밝게 웃는 얼굴의 이성해 대리가 뭔가를 내밀었다.
소형 포장된 약과.
“이거 드세여.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에여!”
“그럼 돌고래 님이 드시는 편이….”
“반응을 보고 싶어여!”
“…….”
“포도야. 나가면 얼큰한 것도 먹자. 우리 곱창전골집 다시 가야지?”
“예. 다만… 이 시도에도 준비가 필요한데.”
“뭔데?”
나는 시선을 피했다.
“돈… 될만한 것 가지신 분 계십니까?”
“……”
“현금도 받습니다. 한…오천쯤.”
“…….”
“…….”
“이거 혹시 사기….”
“어허.”
쪽팔려서 울 뻔했다.
“우주 쇼핑몰은 비현실적, 공상적 공간이 아닌 실존하는 우리의 상점이기 때문입니다.”
음. 그러니까.
‘외계인은… 현실적 존재로 분류된다고…?’
그러고 보니, 이자헌 과장님은 꿈결을 문제없이 추출하고 있기도 했다. 사람으로 판정받는다는 뜻이다.
‘…과장님!’
믿음직한 그 파충류에 대한 존경심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솟아난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5만 원권이 한 다발 있긴 한데. 어차피 프로젝트 활동금이라 뭐 내 돈도 아니다.
-카드도 돼여?
-아, 이거 순금에 보석 맞지? 바리데기 공방 당신구인데….
-요원님, 그거 대여품 아닙니까!
[쇼핑에 쓸 금전이 부족한 가요, 친구?]
[그렇다면 파격적인 제안을 하나 해보겠습니다…. 이 브라운에게 가불받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
요원 둘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바로….
밧줄에 매달린것.
(중략)
“액막이 명태입니다.”
‘그리고 팀원 라인업이…’
뭐, 나쁘진 않았다.
각자 따로국밥이긴 했지만.
일단 가장 후방에 선 건 인상 나쁜 재난관리국 청년이다.
‘청동 요원’이라고 불렸던가.
은하제가 꼰대라고 놀리는 이 녀석은 사실 썩 괜찮은 인물상이었다.
‘좀 고지식하긴 한데, 원래 사회의 더러운 물 덜 먹은 녀석 중에 심성 괜찮은 녀석들이 보이는 징조기도 하고.’
백일몽에 악감정 있는 게 뻔히 보이면서도 꾹꾹 눌러가며 예의를 지키고 나름의 공감 능력을 발휘하는 게 나쁘지 않다. 지금도 맨 뒤에 서는 데에서는 일종의 봉사 정신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여기랑 페어로 다니는 공무원 양반이….’
최 요원.
맨 앞 부근에 있다.
“포도야. 조심.”
제법 태연히 아닌 척하지만, 이 재난관리국과 과련된 최고 등급 괴담에 떨어져서 속이 복잡하고 지킬 시민이 많아 초조한 것이 보인다.
전체적으로 중립 포지션인 김솔음을 달래고 은근히 유도해 보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이기도 하고.
‘딱 비행 청소년한테 당근 준는 형사 꼴인데.’
대체 노루가 얼마나 끝내주는 스파이용 페르소나를 만들어서 저 지경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냥 두고 보고 있다. 같은 흡연자 처지기도 하니까.
“오. 명태 효과 좋네여.”
이성해 대리.
여기는 뭐, 백일몽 엘리트답고.
약간 제정신 아닌데 유능하다는 점에서 말이다.
-명태 조각이 망가질 때까지 반경 다섯 걸음 내의 사람들의 액을 막아준다고 합니다. 제가 구매했으니 제가 들고 이동하겠습니다.
-에이~ 이런 건 원래….
-원래, 같은 건 없습니다. 제 아이템이니까요.
-…….
‘짜식’
자기 아이템 지킬 줄 아네.
아마 자기가 하는 게 속 편하다는 유능한 자 특유의 판단도 더해졌을 것이다.
최단기 승진에, 이레귤러 괴담에서 A등급 꿈결 뽑아내던 폼 어디 안 갔다.
“이쪽이에여.”
방향감각이 가장 좋은 이성해 대리가 거의 동물적으로 뛰쳐나오더니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나가면 뒤풀이라도 해야겠구만. 공무원 양반들이 곱창전골 좋아한다고 했던가? 어떻게, 한우도 좋아하고?”
“어휴, 환장하죠. 시민님.”
“요원님, 제발….”
“꼰대 양반도 한 근은 너끈히 먹을 것 같구만 뭘 빼고 그래.”
“…?!”
“저도 가도 돼여?”
“당연하지.”
저러고 정말로 회식을 하진 않을 걸 알지만, 긴장을 풀고 정신을 가다듬기 위한 대화가 아무 의미 없이 몇 번 오가고.
요원들이 대인용으로 장비를 교체하는 모습과 백일몽 직원들이 아이템을 정리하는 모습이 보인다.
게다가 안개 속에서, 푸른 불꽃이 타오르는 궤적이 희미하게 보이며 방울 소리가 들린다.
안개를 몰아내는 존재감.
***
이어서 시작하시겠습니까?
***
“분명 최 요원님이 쓰라고 하신….”
“잠시, 큽, 잠시만.”
“많이 드십쇼.”
“예옙, 감사합니다.”
최 요원이 불판의 고기를 시원하게 잡아서 입에 가져간다.
무언가를 목으로 넘기는 것이 불가능해 장장 일주일간 물과 유동식만 섭취해 간신히 회복한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는 태도였다.
“금주도 못 할 짓이네, 이거.”
“에헤이, 아무리 그래도 국가 기관에서 알코올을 드릴 수는 없지. 대신 치료가 공짜였죠?”
“여기서 세금 드립 치면 진상이겠지?”
“그것도 잘 아십니다?”
청탁금지법에 아슬아슬하게 안 걸릴 식대를 떠올리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대충 또 최 요원이 무모한 수를 저질러서 ‘아무튼 탈출은 했다’ 상태가 됐다고 여기고 있다는 뜻이다….
“그쪽의 사고뭉치 이력 덕 좀 봤습니다.”
“에이~ 시민 구하려다가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는 거지. 도전적이라는 좋은 단어 두고 너무하신데.”
“예예. 한우 많이 드십쇼.”
적분에 막 응급 치료를 마친 송골매를 만나고 온 참인 그는, 그 사람 이름이 은하제라는 것을 지금에서야 알았다.
그리고 LA 갈비 도시락을 한 손으로도 호쾌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식은땀을 흘리는 데다가 계속 목이 졸리는 환통이 느껴진다는 사람치고는 대단한 태도였다.
-오케이 ㅎㅎ
이 상사는 PTSD 반응 이상의 비정상적인 오염 증세로 아예 육성 대화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목은 아예 쳐다보지 못하게 헝겊으로 가려둔 상황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절대안정 처방을 받고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도 무슨 궁리를 그렇게 하는지 머리가 돌악는 소리가 날 정도로 눈이 번뜩였다.
영선대옥종의 사용 허가.
진시에 울리는 대종의 타명음을 선판에 기대어 듣는 형식으로 치료를 실행.
그리하여 류재관은 어떤 사실을 ㅂ탕으로, 무언가 두려운 추리를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옥 방울은 사람의 오염 정화용이 아니라는 것.
그건 옥명대종도 마찬가지다.
물론 오염 정화에도 어느 정도 효력이 있지만, 그 주된 효력은 그저 정신을 가다듬어 스스로의 정체성을 되찾는 것이다.
“포인트 초기화라는 게 무슨 뜻입니까?”
“우린 실종 한 달쯤 되면 죽었다 치고 퇴사 처리 띄웁니다. 그쪽으로 따지면 의원 면직이라고 해야 하나.”
은하제 대리가 손짓으로 만든다.
“그럼 그때까지 소원권 타려고 개같이 모은 포인트도, 초기화.”
“……!!”
“말짱도루묵되는 거지.”
<어둠탐사기록>의 물리퇴마 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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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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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동아, 지금… 백일몽 주식회사 직원을 같이 일하면 좋을 사람으로 추천받은건가, 우리가?”
물론 백일몽 D조 출신들은 꿋꿋하다.
긍정
최 요원이 빙긋 웃는다.
“어허, 선배의 영업 비밀을 탐내면 쓰나.”
-대신 비밀 꼭 지켜주고ㅎㅎ 포도 믿는다?
-이강헌이라는 사람은 진짜 있어.
-백일몽 퇴사자.
…!
-그런데 어라? 어느날 관리국의 멋진 에이스 요원이 이강헌의 메신저 계정을 입수하게 된 거지ㅎㅎ
게다가 최 요원의 수완이라면 거기서 파생되는 각종 새로운 채팅방에도 성공적으로 잠입했으리라.
-눈 한 깜짝 안 하고 괴담을 탐사하는 엘리트 수석 신입, 김솔음 씨에 대한 소문도 잘 들었고ㅋㅋㅋㅋ
…….
역시 처음부터 다 알고 있던 거구만….
-포도야 정말 양심이 없구나…….
-그래도 우리 막내가 원하면 더 알려줘야지! 아예 백일몽이랑 연 끊는 날에 와서 물어보면 딱 그냥 알려준다 내가ㅋㅋ
안 알려주겠다는 뜻이다.
“이야. 도마뱀 과장이라니. 얼마나 강한지 궁금한데, 막 철근이라도 씹어먹나?”
“하려면 할 것 같은 양반인데.”
“…??”